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 제국 (문단 편집) == 국력 == 역대 이슬람 제국[* 대한민국의 주류사학에서는 중동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1856년 오스만이 유럽의 공법과 시스템을 받아들여 19세기 후반부터는 사실상 유럽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다만, [[동로마 제국]]의 문화, 제도도 계승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오스만 제국을 유럽으로 보는 시각은 꽤 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까일 때 언급된 것이긴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도 오스만 제국을 유럽으로 보듯 이야기 하기도 했다.] 가운데 '''매우 강대한 제국'''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번 마음먹고 군대를 보냈다 하면 전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 중동 제국들 가운데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국가가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밖에 없다. 다른 중동 제국들은 많이 동원해 봐야 10만 명 미만이었다. * 영토의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우마이야 제국]]보다는 훨씬 적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아나톨리아]]와 [[그리스]]를 차지하고 동유럽까지 영향력을 끼치기는 하였으나 우마이야 제국은 [[이베리아 반도]](알 안달루스)와 페르시아까지 정복했었다. * 그런데도 오스만 제국이 우마이야 제국보다 더 강한, 역대 이슬람 제국 가운데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은, * 우마이야 제국보다 영토 전반에 대한 장악력과 동원력이 더 높았다. 이는 그만큼 오스만 제국의 [[관료]] 제도가 매우 효율적이고 잘 짜여졌다는 뜻이다.[* 오스만 제국이 국력이 가장 강성했던 16세기에도 제국의 인구 자체는 2천만 명으로 유럽 국가들보다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16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은 관료 제도가 매우 부실하고 엉성하여 병력 동원 능력이 오스만 제국보다 더 뒤떨어졌다.] * [[동로마 제국]], [[하자르 칸국]]과 [[프랑크 왕국]]에 틀어막혀 유럽 중심부와 동유럽, 발칸 반도에 대한 공세가 좌절된 우마이야 제국에 비해 [[대항해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팽배했던 근세 유럽의 영역에 끊임없이 공세를 가함으로써 이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 '더 무서운 적'이었다. * 이와 관련하여 후대에 들어와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열강들 가운데 약체화 된 18~19세기 이후에는, 유럽 식민 [[제국주의]]가 나머지 비서방세계를 비교적 일방적으로 침략, 정복할 만한 절대적 군사 우위를 누리기 시작했기에 '서구 문명을 위협한 최후의 동방/비서구 제국'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 부분 유럽 중심의 관점이고 결과론적인 부분도 없지 않지만, 어쨌건 우마이야 제국은 백 년도 못 가고 망한 반면 오스만 제국은 당장 현대 [[폴란드]]-[[우크라이나]] 변경 지대 [[포돌리아]]나 [[아제르바이잔]] 같은 제국의 끝자락이요 국경지대 각축장을 제외하고는 한 번 점령한 지방은 백 년은 넘게 장기적으로 통치하는데 성공했다. 확장의 한계점 끝자락이자 최전방 전선이었던 [[헝가리]]만 하더라도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승전하고부터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50년 이상 영유했고,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같은 유럽 내 핵심 지방들은 14-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거진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통치했다. * 다만 존속기간은 오스만이 훨씬 길었어도 오늘날 중동으로 분류되는 지역 전체를 통일하는 것에 보다 근접했던 것은 분명 우마이야 제국이다. 오스만 제국은 최강대국이었긴 하지만 최초의 세계제국의 후예인 '''페르시아'''만큼은 끝까지 정복하지 못했고, 비록 대부분의 기간을 오스만이 우세를 점하긴 했지만 페르시아 또한 정복되지도, 패권에 순종하지도 않은 채 끝까지 오스만이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2인자'''로 남았다. 또한 [[북아프리카]] 역시 [[모로코]]의 끈질긴 저항 때문에 결국 오스만이 정복을 포기하며 북아프리카 전체 정복을 이뤄내지 못했다. 반면에 우마이야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당대 중동 세계에서 2인자 혹은 라이벌이라 부를만한 국가 자체가 없었던 말 그대로 '''온리 원'''이었다. 유럽세계에 얼마나 더 위협이 됐는가에 대해서도 오스만과 우마이야의 시대에 유럽의 강국, 중심지가 각각 달랐기 때문에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발칸 반도]] 정복에 성공한 것은 분명 오스만이지만, 오스만 제국 시대의 동로마는 수많은 풍파를 거치며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쇠약해진 상태였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마이야가 오스만이 못한 스페인 정복을 해냈지만 우마이야 시대의 [[서고트 왕국]]과 오스만 시대의 [[합스부르크 제국]] 간에는 같은 스페인이라도 [[넘사벽]]의 국력차가 존재했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도 빼놓을 수 없는데 우마이야와 오스만은 시야를 중동 밖으로 넓히면 동시대에 각각 [[당나라]], 그리고 [[스페인 제국]]/[[명나라]]가 존재하는데 페르시아의 경우 중동 밖의 세계를 따져봐도 1대1로 대적할 국가가 없는, 중동 최강을 넘어선 세계최강이었기 때문에 이런 시각에서는 페르시아가 역대 최강일 수도 있다. * 유럽 중부·동부에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게 해 준 단 [[몽골 제국|둘]]뿐인 제국인 데다가 [[메흐메트 2세]], [[쉴레이만 1세]] 등 멋진 명군이 활약한 이야기는 세간에 유명하기도 하다. 유럽사에서 [[악의 축]]이나 마왕 같은 이미지로서, 서로 전투를 벌이던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이 상대라면 [[신성 동맹]]등 기독교적 명분 아래 한 뜻이 되어 연합군을 편성하는 일도 빈번했다. * 당시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악명은 [[고대 그리스]]에서 [[아케메네스 제국]]에 대한 악명과 비슷하였다.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같은 이슬람이고 부분/전면적으로 튀르크계 국가이기까지 한 [[카라만 베이국]], [[백양 왕조]], [[사파비 제국]], [[맘루크 왕조]]도 다같이 유럽 국가들과 손을 잡고 오스만 제국에게 대항하려 했을 정도다. [[그레이트 게임|19세기에 러시아가 부상]]하기 전까지 유럽 세계 공공의 적은 오스만 제국이었다. 단 이것은 학계의 정설이나 진지한 토론의제 같은 것이 아니라 역사덕후들 사이에서 오가는 의견일 뿐이며, 이조차도 우마이야,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등 이견이 갈리니 참고할 것. 수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이 난립해서 항상 어지러운 중동, 북아프리카,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래 존속한 제국 중 하나인데 무려 600년 넘게 존속하였다.'''[* 한국사에서는 천년 가까이 갔던 [[신라]]가 있었고 그 외에도 대부분의 주요 왕조가 최소 400년 이상은 갔기에 오스만의 600년이 보통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이건 한국이 특이한 것이다. 대부분의 세계사에선 이웃국가들과 전쟁이 일상이라 한 국가와 왕조가 200년만 가도 굉장히 장수하는 편이다. 중원만 보더라도 중간의 [[신나라]]로 단절된 [[한나라]]를 제외하면 400년 이상 통일 왕조로 존속한 왕조가 없다. 더군다나 중동 지역은 여러 국가와 민족, 부족들이 오가며 충돌하는 요지였기 때문에 한 국가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게다가 적어도 부르사, 에디르네 초기 양대 [[수도(행정구역)|수도]] 점령 이전까진 거의 구전 설화 수준으로 기록이 없긴 하지만, 이후로는 몇몇 [[술탄]] 개인이 문약한 성격이었거나 술탄의 모후들이 권력을 휘두르거나, 예니체리 친위대에게 황제권이 농락 당한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이슬람 제국들 중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황제권을 휘두른 국가이다. 동시대 [[사파비 제국]]은 훨씬 일찍 18세기 초반, 그것도 내부 권력 구조의 취약함이란 근본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지방 토후였던 [[아프가니스탄]] 일대의 반란으로 멸망했고, [[무굴 제국]] 또한 [[아우랑제브|알람기르 1세]] 치세의 과다한 전쟁으로 인해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반란을 틀어막지 못한 채 18세기 초중반 이후로는 [[델리]] 일대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 식물 정권으로 마지막 한 [[세기]]를 보낸 걸 보면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은 끝에서 네 번째인 [[압뒬하미트 2세]](1876~1909년 재위)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 그대로 전제 권력을 유지했으니 이슬람 제국 국가들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근대]]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중앙 집권 [[전제군주정]]을 유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핵심이었던 [[소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계승하여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의 특성을 상당 부분 부정하고 세워졌기에 둘 사이의 연속성은 있더라도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당장 [[무스타파 케말]]의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케말리즘 또는 '여섯 개의 화살'은 [[공화주의]], [[민족주의]], [[인민주의]], 국가 통제, [[세속주의]], [[혁명]]인데, 이 가운데 공화주의는 오스만 제국에 명백히 반대하는 것이고, 민족주의도 오스만 제국의 체제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 또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민주의도 무슬림과 무슬림이 아닌 자(즘미)를 차별하던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지배층이 이슬람을 믿었던데다 황제는 아예 [[칼리파]]이기도 했던 오스만 제국의 체제와 세속주의 역시 명백히 위배된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튀르키예 공화국의 전신인 것은 맞지만[* 다만 이조차도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이탈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그리스]], 튀르키예,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 등등의 역사이기도 하듯이 오스만 제국사 역시 튀르키예는 물론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시리아]] 등 많은 나라들의 역사이기 때문. 더군다나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인]]만 우대하지 않았듯이 오스만 제국도 [[튀르크인]]만 대접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과 튀르키예 공화국의 관계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관계와 유사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